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대한민국 모든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사이버 외교관, 한국홍보대사로 변화시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반크는 한국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누구나 쉽게 반크 활동을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카드 뉴스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습니다.
반크에서 제작한 카드뉴스를 통한다면 초, 중, 고, 대학교 수업시간에 누구나 쉽게 한국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며, 한국을 어떻게 세계에 바로 알리는 지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카드뉴스 배포 참여방법>
카드 뉴스를 내려받아 초, 중, 고, 대학교 수업시간에 교재로 활용하거나 주변에 배포하시면 됩니다.
★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캠페인 ④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캠페인 4탄-마무리 일본의 과거, 앞으로 또 얼마나 바뀔까요?
일본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주입하고 있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이와 더불어 일본 정부도 역사적 사실을 지우고, 은폐하고, 조작하는 행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 독도가 17세기부터 자국의 일부였다는 주장.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끌려온 일본군 ‘위안부’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자발적으로 성노예가 되었다는 주장.
태평양전쟁 시기, 군수공장, 광산 등 혹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게 된 조선인(한국인)들이
스스로 노동에 지원하였다는 주장.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하여 과거에 일본 당국이
스스로 잘못을 수차례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선례가 있었습니다.
‘울릉도 외 1도(독도)의 건에 대해서 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 독도와 관련된 태정관 (일본 정부 최고행정기관) 지령, 1877년 3월 29일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의 여성 명예와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킨 문제…”
–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고노 요헤이 당시 일본 내각관방장관의 담화 중, 1993년 8월 4일
“일본은 1940년대 … 수많은 한국인이 …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으며…”
– 사토 구니 당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의 연설 중, 유네스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2015년 7월 5일
그러나 현재 일본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정은커녕 역사 왜곡과 역사 지우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우리 (일본) 고유의 영토인 … 다케시마 영토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
– 2023년 7월 23일 일본 정부가 발표한 2023 방위백서 내용 중
‘기시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행 요구’
– 2023년 3월 16일 열린 한•일정상회담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된 회담 내용 중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른 … 모집, 관 알선 및 징용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을 강제노동이라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제211회 중의원 안전보장위원회 회의에서, 2023년 3월 9일
역사적 사실을 숨기고 조작하는 것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다른 나라를 존중하고 국제 사회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코자 하는
일본 교육기본법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올바른 교과서를 통해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함께해 주세요!
★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캠페인 ③ 강제동원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거듭되는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글로벌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그 세번째 주제로 강제동원과 관련된 일본 교과서의 잘못된 주장을 지적합니다.
1815.
이 숫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작년 (2022년) 기준으로 생존해 계신 한국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총 인원 수입니다.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는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며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인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을 전쟁터에, 군 시설에, 산업 현장에 강제적으로 동원하였습니다.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던 조선인 (한국인)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부로, 고령의 나이가 된 이후에도 일제강점기 (대일항쟁기) 에 겪었던 일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기억하고 계시는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당시 강제동원의 참혹한 실태와 관련된 진실은 점점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23년 현재까지도 일본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사죄는 물론 피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전달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른 개별 도항 이외에, 모집, 관 알선 및 징용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모두…강제노동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았으며…”
–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2023년 3월 9일 일본 중의원 안전보장위원회 회의에서
강제동원의 역사를 지우려고 하는 것은 일본 정부 당국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의 학교 현장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를 확인해 보면, 강제동원이 발생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언급되어 있지 않거나, 조선인 (한국인)들의 인권과 자유에 반하여 일어난 만행임을 숨기려는 듯 ‘참가’ ‘합류’ ‘지원’ 등의 표현이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사실 왜곡과 입장 변경은 일본의 학생들에게 편견을 가지게 하고, 국제 사회로부터 일본의 신뢰를 떨어뜨리기만 할 뿐입니다.
강제동원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숨기고 조작하는 것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다른 나라를 존중하고 국제 사회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코자 하는
일본 교육기본법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반크는 이번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일본의 교과서의 다양한 문제를 일본어 등 외국어로도 제작해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알려나갈 예정입니다. 일본이 올바른 교과서를 통해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일본 교과서 문제 해결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캠페인 ② - 일본군 ‘위안부’ 문제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거듭되는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글로벌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그 두번째 주제로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일본 교과서의 잘못된 주장을 지적합니다.
지난 1993년, 일본 정부는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고노 요헤이 (河野洋平, 1937-) 명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과의 뜻을 밝힌 ‘고노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1993년과 1994년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일본사 교과서 중 상당수와 1996년 검정을 통과한 모든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최근 변화하고 있습니다.
2021년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이 누락되어 있거나 전후 보상 문제에 대해서만 다루는 교과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진실을 감추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본이) 국가적으로 (여성을) 성노예로 삼았다는 근거없는 중상…” (아베 신조 전 총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게, 최종적으로 해결…”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일본의 사실 왜곡과 입장 변경은 일본 학생들로 하여금 편견을 가지게 할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로부터 일본의 신뢰를 잃게 할 뿐입니다.
이와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가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일본군 ‘위안부’는 군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여성들의 자발적인 행위였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정의와 책임을 중시하도록 하는 일본 교육기본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반크는 이번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일본의 교과서의 다양한 문제를 일본어 등 외국어로도 제작해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알려나갈 예정입니다. 일본이 올바른 교과서를 통해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일본 교과서 문제 해결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 우리 말과 글을 지킨 역사속 한글 홍보대사를 선정해 전세계에 알리는 활동시작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가 다가오는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우리 말과 글을 지킨 역사속 한글 홍보대사를 선정해 전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착수합니다.
반크는 이를 위해 우리 역사속 한글홍보대사로 “주시경”, “호머 헐버트” 박사, “조선어학회”를 선정해 우리 말과 글을 지킨 이들의 업적으로 소개하는 포스터를 제작해 SNS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나갑니다.
우선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주시경을 소개하는 포스터에는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라는 내용과 함께 국민들이 우리말을 쉽게 읽고 쓴다면, 나라의 힘이 하나로 모여지고 국민들이 지혜로워져 강해질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우리말에 대한 다양한 문법책, 교과서, 연구서적 등을 발간, 제자들을 키워낸 주시경 선생의 삶을 소개합니다.
두번째는 외국인으로 한글을 사랑한 호머 헐버트 박사를 우리 역사속 한글 홍보대사로 선정했습니다.
포스터에는 “어떤 문장에 영국인들은 스무 단어를 써야 할 때 조선인들은 열세 단어만 쓰면 된다”라는 내용으로
호머 헐버트 박사가 1889년 뉴욕 트리뷴에 한글의 우수성을 최초로 국제사회에 소개한 부분을 담았습니다
또한 1903년 미국 스미스소니언협회 연례보고서에 논문 발표한
“한국어는 대중 연설 언어로써 영어보다 우수하다!”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특히 호머 헐버트 박사가 1891년 한국역사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 출간한 부분을 소개했으며,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마는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아니하고 오히려 업신여기니 어찌 안타깝지 아니하리오” 라는 한국인보다 더 한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내용도 담았습니다.
세번째 포스터는 우리 말과 글을 지켜 나라를 지킨 “조선어학회”의 활동내용을 담았습니다.
조선어학회는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에 우리 말글을 지키기 위해 국어를 연구하고, 국어 사전을 편찬했던 모임입니다.
조선어학회는 주시경이 설립한 국어연구학회를 계승하여, 1921년 12월 조선어연구회로 창립되었고, 1931년 조선어학회로 개편되었습니다.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 .”
-조선어학회 회원들에 대한 예심종결 결정문
대일항쟁기에 일제는 우리 말글을 강력하게 탄압했습니다. 한국인들은 학교에서 일본어를 국어로 배워야 했고, 한국어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대대로 조상에게 물려받아 온 이름조차 일본식으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조선어학회는 일제의 이러한 한글 말살 정책에 맞서 우리 정체성을 담아내는 국어를 지키기 위해 사전편찬 활동을 했습니다. 이는 또 다른 독립운동이었습니다.
반크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100년전 우리 말과 글을 지킨 “주시경”, “호머 헐버트” 박사, “조선어학회”를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이 제대로 알고 전세계에 알려나갈수있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전세계적인 한류열풍으로 한국에 관심있는 외국인이 1억 7천만명을 돌파한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한글과 한국어로 이어질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반크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전세계적인 한류열풍이 대중문화를 넘어 한글, 한국어로 이어지고
우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주시경”, “호머 헐버트” 박사, “조선어학회”로 확장되길 기대합니다.
반크가 제작한 포스터는 반크 사이트와 사진공유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내려 받아 널리 홍보할수 있습니다.
★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캠페인 ① - 독도
일본의 과거, 앞으로 또 얼마나 바뀔까요?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거듭되는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글로벌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그 첫번째 주제로 독도에 대한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간하는 학습지도요령 내용의 변화와 모순점을 지적합니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 수행을 위해 한국의 영토였던 독도를 한국 몰래 불법적으로 편입을 시도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1905년 이전에는 독도를 단 한번도 일본 영토라고 하지 않았고, 일본의 역사기록에는 오히려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고 하거나 조선의 영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05년 불법 편입을 시도할 당시 일본 정부는 독도를 “주인이 없는 섬”, 즉 무주지(無主地, Terra Nullius) 선점 논리를 내세웠는데, 2차 대전 이후에는 독도를 “17세기에 영유권을 확립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모순되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7세기에는 일본 고유영토였다고 주장하는 섬이 1905년에는 주인이 없는 섬이라는 논리적 문제 발생)
그런데 독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논리뿐만 아니라, 일본의 교과서에서도 일본의 과거가 바뀌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초중고 교과서 검정 등 일본 교과과정의 기준이 되는 “학습지도요령”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2008년 이전까지 일본은 이 학습지도요령에서 독도를 언급하지도 않았음.
2008년 7월 14일, 갑자기 중학교용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개정을 통해 독도 문제 언급을 처음 지시
2014년 1월 28일, 중학교, 고등학교용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개정을 통해 독도에 대해 “일본 고유 영토, 한국이 불법 점거”라는 부당한 주장을 설명할 것을 지시
2017년 3월 31일, 초등학교용 학습지도요령 및 6월 21일, 해설서를 개정하면서 일본 초등학생에게도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인식을 주입
2023년 3월 28일, 이러한 학습지도요령을 바탕으로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을 통해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라는 부당한 주장을 수록한 교과서가 또 확대
2008년 이전에는 언급도 하지 않던 독도를 2014년부터는 “과거부터 일본 영토”였다는 ‘고유영토’로 가르치다니, 앞으로 또 일본의 과거는 얼마나 바뀔까요?
일본의 사실 왜곡과 입장 변경은 일본의 학생들에게 편견을 가지게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일본의 신뢰를 떨어뜨리기만 할 뿐입니다. 일본 교육기본법의 목표처럼 일본의 교육이 “다른 나라를 존중하고 국제사회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고유한 영토인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왜곡해서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일본 스스로 기록해온 역사적 진실을 속이는 일이자,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며, 다른 나라를 존중한다는 일본의 교육기본법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반크는 1999년 설립 이후 일본의 교과서 및 군함도, 사도광산 유네스코 유산 등재 문제 등 확장되는 역사 왜곡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일본 스스로 이러한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8일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해서도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다국어 콘텐츠를 제작해 국제사회에 알리는 동시에 국내 학생들도 일본 교과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응 논리를 기르는데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제작해 배포하였습니다.
반크는 이번 ‘일본 교과서 바로잡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일본의 교과서의 다양한 문제를 일본어 등 외국어로도 제작해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알려나갈 예정입니다. 일본이 올바른 교과서를 통해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일본 교과서 문제 해결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 한국의 친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한국명 석호필, 1889.3.15.~1970.4.12.) 박사를 알리는 카드뉴스를 제작하여, SNS를 통해 배포합니다.
플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인으로 토론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16년 11월 선교사이자 세브란스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3.1운동 현장을 촬영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탑골공원에서 만세 시위하는 한국인들을 촬영하여 국제사회에 알렸습니다. 스코필드는 3.1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협력을 요청받은 유일한 외국인이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또한 일제가 3.1운동의 보복으로 민간인들을 학살한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조사하여 「제암리의 대학살」 보고서, 「수촌 만행 보고서」를 작성하여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우리 정부는 스코필드 박사의 공로를 인정하여 1968년 독립장을 수여했습니다.
스코필드 카드뉴스는 한국어 영어 각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스코필드 박사의 3.1운동 관련 활동과 은퇴 후 한국에서의 활동, 그리고 마지막까지 한국인들에게 3.1운동 역사와 정신을 전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코필드 박사와 같이 한국의 독립을 위해 함께한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2023년 5월, 내한한 캐나다 주스탱 트뤼도 총리는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스코필드 박사의 묘역에 참배했습니다. 한국의 독립운동에 함께한 스코필드 박사가 21세기 한국과 캐나다를 잇어주고 있습니다.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은 한국과 세계를 이어주는 소중한 우리의 역사입니다.
반크는 스코필드처럼 한국과 세계를 잇는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을 알리는 캠페인을 계속 전개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류로 높아진 세계인의 관심이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로 이어지고, 세계인들이 더 친근하게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를 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카드뉴스 원고
#1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 공원
10년간의 일본의 압제를 견디며 숨죽여 온 한민족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찰칵!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한 외국인이 촬영하여 세계에 알렸습니다.
바로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한국명 석호필, 1889.3.15~1970.4.12)입니다.
March 1st, 1919, Seoul Pagoda Park
Koreans who endured 10 years of Japanese oppression shouted, ‘Long Live Korean Independence!’
Click! One foreigner took a picture of this historical moment and spread it to the world.
He is Frank William Schofield(Korean name as Seok Ho-pil, 1889.3.15-1970.4.12).
#2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는 1889년 3월 영국 워릭셔 럭비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하여 토론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16년 11월 선교사이자 세브란스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한국에 처음 왔습니다.
Frank William Schofield was born in Rugby Warwickshire, England on March 1889, emigrated to Canada and received a doctorate at the University of Toronto, and in November 1916, first came to Korea as a missionary and professor of the Severance Hospital.
#3
스코필드는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는 이갑성의 부탁으로 3.1운동 현장
을 촬영했습니다. 그는 3.1운동에 대해 협력을 요청받았던 유일한 외국인이었습니다.
“나는 늘 박사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위해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인 것 같이 느껴왔소. 박사는 우리를 위한 천사였소”-이갑성
Schofield filmed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at the request of his hospital colleague Lee Gap-seong.
He was the only foreigner asked to cooperate with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I’ve always felt that the doctor was an angel sent from above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of our people. He was the angel who came for us.”- Lee Gap-seong
#4
스코필드는 기꺼이 3.1운동 현장을 찾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한국인을 면회하고, 일본 고관들을 찾아가 한국인에 대한 고문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스코필드는 일제의 만행을 직접 조사해서 해외에 알렸습니다.
Schofield willfully joined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to take pictures and promote the movement to the world.
He also visited Koreans imprisoned in the Seodaemun Prison and demanded to Japanese high officials to stop torture inflicted on Koreans.
Furthermore, Schofield personally researched Japan’s atrocities and spread them to the world.
#5
1919년 4월 제암리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제암리 학살은 일제가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제암리와 인근 지역의 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4월 15일 일본군은 제암리 마을에 들어가 15세 이상의 남자들을 예배당에 모으고, 불을 질러 23명을 학살하고 31채의 가옥을 불태웠고, 인근 고주리 주민 6명도 학살했습니다.
In April 1919, the Jeamri Massacre occurred.
The Jeamri Massacre was an incident where Japan massacred civilians of Jeamri and nearby regions as revenge toward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On April 15th, the Japanese army gathered men over the age of 15 inside and killed 23 by burning down the building. They also burned 31 houses and murdered 6 residents of nearby Goju-ri.
#6
스코필드는 소식을 들은 바로 다음 날 현장을 찾아 조사했습니다.
그가 작성한 「제암리의 대학살」보고서는 1919년 5월 27일 중국 상하이에서 발행되던 영자신문 『상하이 가제트』에 보도되었고, 「수촌 만행보고서」는 1919년 7월 26일 미국의 장로회 기관지 『장로교 증인』에 실렸습니다.
Schofield immediately visited and investigated the site a day after hearing the news.
His report, 「The Massacre of Chai-Amm-Ni)」, was published in the English newspaper in Shanghai, 『The Shanghai Gazette』, on May 27th, 1919.
On July 26th, 1919, his 「Report of the Su-chon Atrocities」 was published in the American Presbytery issue, 『Presbyterian Witness』.
#7
스코필드는 기회가 닿는 대로 한국인을 도우며 일제의 악행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가 찍은 태형 피해자 사진은 1919년 7월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 첨부되었으며, 그해 8월 일본에서 열린 선교사 모임에선 일제의 만행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였고, 일본 총리를 만나 일제의 악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Schofield helped Koreans in every way he could and spread the atrocities of Japan to the world.
His photograph of a lashing victim was included in the 1919 July report for the U.S. Secretary of State. In the August of the same year, he spoke criticizing speech at the missionary conference held in Japan and met the Japanese Prime Minister to cease Japan’s atrocities on Korea.
#8
일제는 한국을 돕는 스코필드를 항상 감시하고 괴롭혔습니다.
1920년 3월 세브란스 근무 계약기간이 만료된 스코필드는 캐나다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캐나다에서도 강연이나 기고를 통해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일제를 비판하고, 한국을 응원했습니다.
Japan continuously surveyed and harassed Schofield and his activity against Japan.
In March 1920, Schofield returned to Canada due to the end of his work contract with Severance Hospital.
However, he continued to spread the situation in Korea, criticized Japan, and supported Korea through lectures and writings in Canada.
#9
1958년 스코필드는 국빈으로 초청되어 한국에 왔습니다.
이후로 그는 한국에 머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고아를 돕고, 한국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한국인들에게 3.1운동 역사와 그 정신을 전했습니다.
“1919년 젊은이들과 늙은이들에게 진 큰 부채를 부디 잊지 말라. 한 민족은 때로 항거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가 있다. 그렇지 않으며 그 혼까지 잃고 만다. 항거하지 않았다면 일종의 노예 상태를 쉽게 하거나 눈가림하게 했을 것이다. ”
In 1958, Schofield returned to Korea as the national guest. He stayed in Korea to teach students, help orphans, and voice for the human rights and democratization of Korea.
Until the end, he delivered the history and spirit of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to Koreans.
“Don’t forget how the young and old sacrificed in 1919 for Korea’s future. These are a few words I want to tell young Koreans today. At times, we face injustice we have to fight against and sometimes the price for achieving that goal is our life. This, however, sets us free from a state of slavery and brings us a bright future.”
#10
3.1운동의 증인으로서 그 역사와 정신을 전하고, 한국을 사랑하여 끝까지 함께한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는 진정한 ‘한국의 친구’입니다!
여러분도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의 꿈을 이어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지구촌을 변화시켜주세요.
반크 독립운동가 꿈 kkum.prkorea.com
Frank William Schofield, a witness of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who continuously spread its history and spirit to the end with his love of Korea, is the true ‘Friend of Korea’!
Let’s carry on the dream of Frank William Schofield by promoting Korea to the world and changing the global society.
VANK Independence Activists’ Dream kkum.prkorea.com
★ 한국인의 친구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한문화재단과 함께 외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한국명 배설, 1872.11.3~1909.5.1)을 알리는 카드뉴스를 한국어와 영어로 제작하여 배포합니다.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이하 베델)은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1904년 3월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 특별 통신원으로 한국에 왔다가, 같은 해 7월 18일 구한말의 대표적인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신속한 보도와 날카로운 논설로 한국인들의 항일 사상을 높이고, 세계인들에게 일본의 침략 사실을 바르게 알렸습니다. 우리 정부는 베델의 활동을 인정하여 195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
베델의 카드뉴스는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베델이 한국에 오게 된 경위와 <대한매일신보> 소개, <대한매일신보>의 대표적인 항일보도 내용, 베델의 유언과 장례식 모습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언론인으로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웠던 베델의 뜻을 이어 우리도 한국과 지구촌의 변화를 위해 활동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올해는 한국과 영국의 수교 140주년입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2월 이를 기념하여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업적을 기리는 동상을 베델의 고향인 영국 브리스톨에 건립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베델 카드뉴스를 통해 세계인들이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한국과 세계를 이어주는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을 알려 나갈 계획입니다.
여러분도 어니스트 베델의 꿈을 이어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지구촌을 변화시켜주세요.
>>카드뉴스 내용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한국명 배설/ 1872.11.3~1909.5.1
#1
“이토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일필이 한인을 감동하게 하는 힘이 매우 크다. 그중에도 지금 한국에서 발간하는 외국인의 <대한매일신보>는…한인을 선동함이 이어지니 이에 관하여는 통감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식민지화의 큰 걸림돌로 언급한 <대한매일신보>를 발행한 외국인은 누구일까요?
바로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한국명 배설, 1872.11.3~1909.5.1)입니다.
#2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은 1872년 11월 3일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1904년 3월 10일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 특별 통신원으로 한국에 왔다가,
1904년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습니다.
#3
<대한매일신보>는 국한문판, 영문판, 한글판으로 발행되었는데, 1907년 9월 발행 부수가 1만 부를 넘었습니다. 이는 당시 발행되던 신문 전체의 배가 넘는 부수였습니다.
베델은 발행인 겸 편집인이었고,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함께했습니다.
#4_
<대한매일신보>는 각지에서 일어나는 항일 의병 활동을 보도했습니다.
당시 일본군과 싸우는 ‘의병’은 사전 검열을 통해 폭도로 표현되었지만,
검열을 피할 수 있었던 <대한매일신보>는 의병 활동을 사실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이러한 보도는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위안을 주었습니다.
#5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영문 호외로 보도했습니다.
1905년 11월 27일 <대한매일신보>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폭로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영문 호외로 보도했습니다. 이를 일본의 <재팬 크로니클>이 보도하였고, 일본에 있는 많은 서양인들은 일본의 한국 침략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6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기록한 고종황제의 밀서를 보도했습니다.
1907년 1월 16일 <대한매일신보>는 영국 <트리뷴>에 실린 고종황제의 밀서를 크게 보도했습니다. 이를 통해 을사늑약에 동의하지 않는 황제의 뜻이 한국인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7
이 밖에도 <대한매일신보>는 항일 비밀결사 ‘신민회’의 본부이자, 일본에 진 나랏빚을 갚기 위해 벌인 범국민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의 의연금을 거두는 총합소 역할을 하는 등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대한매일신보>가 굳건히 항일 논조를 고수하자, 일제는 강력하게 탄압했습니다.
#8
일제는 영국 정부에 베델의 추방을 끈질기게 요구하였고, 베델은 두 차례 재판에 넘겨져 3주의 금고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또한 총무 양기탁을 구속하여 베델의 명예를 훼손하고 신문 발행에 타격을 주었습니다. 베델은 허위 보도 언론을 고소하여 보상금도 받아내었지만, 1909년 5월 1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9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베델 유언
베델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이 참석하였고, 운구 행렬에는 1,000여 명이 함께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제의 침략을 비판하고 한국인을 대변했던 베델의 죽음을 깊이 슬퍼했습니다.
#10
언론인으로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마지막까지 싸웠던 어니스트 베델은
진정한 ‘한국의 친구’입니다.
★ 한국인의 친구 ‘호머 헐버트’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외국인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를 소개하는 한국어와 영어 카드뉴스를 제작하여 배포합니다.
호머 헐버트는 1886년에 육영공원의 교사로 한국에 처음 와서, 한글을 비롯한 한국의 역사, 문화를 알리는 23권의 단행본과 304편의 논문과 기고문을 발표하며 세계에 한국을 알렸습니다. 또한 그는 1905년에 미국에서 고종의 특사로 활약하였고, 1907년에는 이준, 이상설, 이위종의 헤이그 특사와 함께 활동하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국제사회에 알렸습니다. 1949년에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에 방문하였으나 일주일 후에 서거하여 유언에 따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정부는 1950년 호머 헐버트에게 외국인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2019년 8월 외국인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를 알리는 엽서를 제작하였으며, 2022년 8월 호머 헐버트를 명예 한국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캠페인 시작, 2022년 9월 호머 헐버트의 독립장 서훈 등급을 격상하는 캠페인을 전개하였습니다. 2023년 1월에는 호머 헐버트 박사 탄생 160주년을 맞아 기념 우표와 영상을 제작하는 등 호머 헐버트 박사의 업적을 국내외에 활발히 알려왔습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지난 5일 호머 헐버트를 비롯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훈격을 재평가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호머 헐버트 카드 뉴스는 총 9장으로 구성됩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독립운동 활동을 비롯하여, 최초로 한글 교과서를 저술한 호머 헐버트의 한글 홍보 활동, 최초로 아리랑을 서양 음계로 채보하는 등 한국의 예술과 문화 홍보 활동, 한국의 역사 오류 시정 활동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헐버트 카드뉴스는 반크의 외국인 독립운동가 알리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으며, 반크는 이후로 어니스트 베델(영국), 후세 다쓰지(일본), 저보성(중국) 등의 외국인 독립운동가 카드뉴스를 제작하여 홍보하며 전 세계인들에게 더 친근하게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를 알려 나갈 계획입니다.
반크의 외국인 독립운동가 카드뉴스는 반크 사이트(prkorea.com)와 해외 사진 공유 사이트인 플리커에서 자유롭게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카드뉴스 원고
#1
100여 년 전, 오천 년 한국 역사에서 주권을 빼앗겼던 가장 어려웠던 시기
한국을 한국인보다 더 사랑한 외국인이 있습니다.
바로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26.~1949.8.5)입니다.
Around 100 years ago, there was a foreigner who loved Korea more than Koreans during the most difficult time in 5000 years of Korean history when Korea lost its sovereignty.
He is none other than Homer B. Hulbert (1863.1.26.-1949.8.5).
#2
호머 헐버트는 1863년 미국 버몬트주에서 태어나, 1886년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립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에 처음 왔습니다.
학생을 가르치며 한글을 비롯한 한국의 역사, 문화를 사랑하게 되었고, 평생 23권의 단행본과 304편의 기고문을 써서 한국을 알렸습니다.
Homer Hulbert was born in Vermont, United States in 1863.
He first came to Korea as a teacher of Yukyeonggongwon, the first modern Korean public school, in 1886.
He fell in love with Korean history and culture including Hangeul and promoted Korea by writing a total of 23 books and 304 papers and contributions.
#3
호머 헐버트는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1905년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 특사로 활동하였고
1907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헤이그 특사로 활동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강연, 회견, 기고를 통해 38년간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Homer Hulbert fought for Korean independence against Japan.
He acted as the U.S. special envoy to stop the Japanese invasion in 1905 and as a Hague secret emissary to publicize the injustice of the Protectorate Treaty in 1907.
After returning to the United States, he continued the independence movement for 38 years through lectures, interviews, and contributions.
#4
호머 헐버트는 한글을 사랑했습니다.
한글의 우수성을 알고 ≪사민필지≫를 한글로 저술하는 등 앞장서 한글을 사용하였고, 세계에 알렸습니다.
“문장의 단순성과 발성의 힘에서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1889년 ≪뉴욕트리뷴≫지에 한글과 한국어의 우수성 최초 소개
1891년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세계지리서 ≪사민필지≫ 출간
1903년 ≪한국평론≫에 훈민정음 서문 영어로 최초 소개
1904년 ≪한국평론≫에 한글 맞춤법 개정 논문 발표
Homer Hulbert loved Hangeul.
He recognized the excellence of Hangeul and published ≪Saminpilji≫ in Korean to use Hangeul firsthand and spread it to the world.
“Korean alphabet scarcely has its equal in the world for simplicity and phonetic power.”
1889, first introduced Hangeul and the excellence of Korean in ≪New-York Tribune≫.
1891, published ≪Saminpilji≫, the first Korean world geography textbook in Korean history.
1903, first introduced the preface of Hunminjeongeum in English in ≪The Korea Review≫.
1904, published thesis on revised Hangeul orthography in ≪The Korea Review≫.
#5
호머 헐버트는 한국의 예술과 문화를 높이 평가하고 사랑했습니다.
“조선인들은 즉흥곡의 명수이다. 부르는 이마다 노래가 다르다. 조선인들이 아리랑을 노래하면 바이런이나 워즈워스 같은 시인이 된다.”
1893년 ‘시카고세계박람회’ 학술회의에서 한국 설화 최초 소개
1895년 한국 속담 123개를 한국어와 영어로 발표
1896년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아리랑을 서양 음계로 채보하여 최초 소개
1899년 ≪하퍼스≫지에 한민족의 5대 발명품 소개: 금속활자, 거북선, 현수교, 폭발탄, 한글
1902년 ≪한국평론≫에 한국 소설 소개
Homer Hulbert highly appraised and loved Korean arts and cultures.
“Koreans become poets like William Wordsworth when they sing, and they are master of the improvisation.”
1893, first introduced Korean fables at the ‘World’s Columbian Exposition’ academic conference.
1895, presented 123 Korean proverbs in Korean and English.
1896, first transcribed Arirang, previously only transmitted orally, on the Western scale.
1899, introduced five major inventions of the Korean people in ≪Harper’s Magazine≫: metal movable types, the Turtle Ship, suspension bridge, Bomb Shell and Hangeul.
1902, introduced Korean novels in ≪The Korea Review≫.
#6
호머 헐버트는 한국 역사를 독자적인 역사로 인식하고 사랑했습니다.
“한국의 어느 왕조도 중국의 영향 아래 건국되지 않았다. 한국의 유산은 독창적이고 토착적이다.”
-1896년 ‘조선’은 ‘조용하다’의 calm이 아니라, 서광이 비치는 아침햇살(Morning Radiance)을 의미한다.
-1902년 미국인 그리피스의 <한국, 난쟁이 제국> 기고문 반박: 한국인은 미개한 열등 민족이 아니다.
-1905년 ≪한국사≫ 출간, 단군부터 고종까지 800쪽 분량의 온전한 한국 역사 기술
-1906년 ≪대한제국의 종말≫ 출간, 한민족의 역사, 문화 소개 및 을사늑약의 부당함 호소
Homer Hulbert recognized and loved Korean history as an independent history.
“None of the Korean dynasties, since the beginning of the historical era, has been founded through the intervention of Chines influence.”
-1896, ‘Choson(Joseon)’ is not ‘calm’ but ‘radiant’ and means ‘Morning Radiance’.
-1902, criticized ‘Korea, the Pigmy Empire’, an article Griffis from the United States contributed: presented Korean as an uncivilized, less intelligent people.
-1905, published ≪The History of Korea≫, describing around 800 pages of complete Korean history from Dangun to King Gojong.
-1906, published ≪The Passing of Korea≫ to introduce the history and culture of the Korean people and claim the injustice of the Protectorate Treaty.
#7
무엇보다 호머 헐버트는 언젠가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한민족을 사랑했습니다.
“후대에 새로운 조국을 물려주기 위해 지금은 자신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지만, 장차 민족정기를 어둠에서 깨워 잠은 죽음의 이미지이기는 하지만 죽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한민족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호머 헐버트, ≪대한제국의 종말≫ 헌사-
Above all, Homer Hulbert loved Korean people who will one day overcome hardship and rise again.
“…To the Korean people who are now witnessing the passing of old Korea to give place to a new, when the spirit of the nations, quickened by the touch of fire, shall have proved that though “Sleep is the image of death” it is not death itself.”
-Homer Hulbert, ≪The Passing of Korea≫ Preface-
#8
1949년 호머 헐버트는 40년 만에 국빈초청으로 한국에 방한했습니다.
하지만 도착 일주일만인 1949년 8월 5일 생을 마감하였고 그의 평생의 소원대로 한국 땅에 묻혔습니다.
“나는 웨스터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In 1949, Homer Hulbert returned to Korea as the national guest for the first time in 40 years.
However, he passed away on August 5th, 1949, a week after his arrival, and was buried in Korean soil according to his life wish.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
#9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여 세계에 알렸고, 한국 독립운동에 끝까지 함께하였으며
지금은 한국 땅에 묻힌 외국인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는 진정한 ‘한국의 친구’입니다!
여러분도 호머 헐버트의 꿈을 이어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지구촌을 변화시켜주세요.
반크 독립운동가 꿈 kkum.prkorea.com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hulbert.or.kr
외국인 독립운동가 글로벌 홍보 프로젝트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와 한문화재단이 함께 합니다.
Homer Hulbert, the foreign independence activist who loved Korean history and culture to spread them to the world, who participated in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o the very last moment, who is now resting in the soil of Korea, is the true ‘Friend of Korea.’
Let’s carry on the dream of Homer Hulbert by promoting Korea to the world and changing the global society.
VANK Independence Activists’ Dream kkum.prkorea.com
The Hulbert Memorial Society hulbert.or.kr
Foreign Independence Activist Global Promotion Project is in collaboration with VANK and Korea Culture Foundation.
★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26.~1949.8.5.)
호머 헐버트는 1886년 7월 육영공원의 교사로 처음 한국에 와서, 한국 역사, 문화 등에 관한 20권의 단행본과 304편의 논문 및 기고문을 발표하며 한국을 세계에 알렸고, 1905년 미국에서 고종의 밀사로,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특사로 활동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국제사회에 알렸습니다.
특히 헐버트는 한글에 매료되었는데, 1889년 <뉴욕트리뷴>지에 <조선어>라는 글을 기고하여 역사상 최초로 한글과 한국어의 우수성을 국제사회에 소개하였고, 1891년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세계지리서 <사민필지>를 출간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설화, 속담, 음악, 예술, 시, 소설 등에 관한 논문을 100여 편 이상 발표하였고, 이는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자료가 되었습니다.
1907년 일본의 박해로 미국으로 돌아간 헐버트는 미국에서도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돕고, 순회강연을 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86세의 헐버트는 한국을 찾았지만, 도착한 지 1주일 만에 서거하여 한국 땅에 묻혔습니다. 대한민국은 1950년 3월 1일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2014년 10월 9일에는 문화, 예술 분야의 최고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반크 21세기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 카드뉴스는 총 5장으로 구성되며, 한국어와 영어로 제작되었습니다.
카드뉴스 첫 장에는 “나는 죽는 날까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이다”라고 한 헐버트 모습과 함께 1886년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고, 1905년 고종의 밀사 활동과 1907년 헤이그 특사 활동을 소개합니다. 이어 국제사회에 한글을 처음 알리고,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출간하고 여러 한국 관련 자료를 발표하며 세계에 한국을 소개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헐버트의 활동을 21세기 독립운동으로 이어갈 수 있는 반크 한국홍보자료 제작과 배포 활동(wisdom.prkorea.com)을 소개합니다. 또한, 잘못된 한국 소개에 적극적으로 항의하였던 헐버트의 여러 일화를 소개하며 반크의 한국 오류시정 활동(korea.prkorea.com)을 소개합니다.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는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했습니다. 이승만은 프린스턴 대학 시절 “헐버트는 다른 외국인들과 다릅니다. 헐버트야말로 지성과 인품을 겸비한 진정한 한국의 친구입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상해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독립신문>에는 헐버트의 활동이 자주 기사화되었습니다.
1886년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과 첫 인연을 맺은 후에 자신의 전 생애 동안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그리고 세계에 한국을 바르게 알리기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그의 뜻을 이어 세계에 한국을 바르게 알리고 한국오류를 시정해나가는 21세기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민국 청소년과 청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 카드뉴스는 반크의 21세기 독립운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으며, 자료는 반크 사이트(prkorea.com)에서 자유롭게 내려받은 후 SNS를 통해 공유할 수 있습니다.
<원고>
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26.~1949.8.5.)“나는 죽는 날까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이다.”
호머 헐버트는 1886년 7월 육영공원의 교사로 한국에 처음 왔습니다. 한국 역사, 문화 등에 관한 20권의 단행본과 304편의 논문 및 기고문을 발표하며 한국을 세계에 알렸고, 1905년 미국에서 고종의 밀사로,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특사로 활동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국제사회에 알렸습니다.
한국의 독립을 염원한 호머 헐버트의 꿈은 21세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
헐버트는 특별히 한글에 매료되었습니다.
1889년 <뉴욕트리뷴>지에 <조선어>라는 글을 기고하여 역사상 최초로 한글과 한국어의 우수성을 국제사회에 소개하였고, 1891년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세계지리서 <사민필지>를 출간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설화, 속담, 음악, 예술, 시, 소설 등에 관한 논문을 100여 편 이상 발표하였고, 이는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자료가 되었습니다.
호머 헐버트의 꿈을 잇는 21세기 독립운동에 함께 해주세요!
#3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의 꿈을 이어
한국을 전 세계에 바르게 알리는 한국홍보자료를 제작하여 배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국 홍보자료 제작과 배포에 함께 해주세요!
반크 집현전 사이트-한국홍보자료아카이브
wisdom.prkorea.com
#4
헐버트는 또한 잘못된 한국 소개에 적극적으로 항의했습니다.
1882년 출간된 그리피스의 <은둔의 나라(Hermit Nation)>를 오류가 많고 왜곡, 편향이 너무 심하다며 강하게 비판하였고, 1902년 그리피스가 <뉴잉글랜드> 잡지에 기고한 ‘한국, 난쟁이 제국(Korea, the Pigmy Empire)’이라는 글에는 “한국인을 마치 미개하고 지능이 낮은 열등 민족으로 표현했다”고 항의했습니다.
1885년 퍼시벌 로웰이 쓴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의 표현에 대해
“‘밝다. 아름답다. 깨끗하다’는 뜻의 선(鮮)자를 왜 ‘고요하다’는 뜻의 ‘Calm’으로 해석했는지 알 수 없다”라며, ‘고요한 아침’이 아니라 ‘서광이 비치는 아름다운 아침’이라는 뜻으로 ‘Radiant Morning’이나 ‘Morning Radiance’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호머 헐버트의 꿈을 잇는 21세기 독립운동에 함께 해주세요!
#5
세계에는 오늘날에도 잘못 알려진 한국 정보가 많습니다.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의 꿈을 이어
전 세계에 잘못 알려진 한국 정보를 발견하고 오류를 시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국 오류 발견과 시정에 함께 해주세요!
반크 21세기 이순신 오류시정 사이트
korea.prkorea.com
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hulbert.or.kr
★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반대 글로벌 캠페인, 미쓰비시 이중행태 비판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이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던 군함도!
최근 군함도에서 조선인을 강제노역시켰던 일본 기업 미쓰비시가 중국인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우호비를 세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은 외면하고 중국인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이에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사도광산의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전세계에 알리고자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하는 카드뉴스를 한국어, 영어로 제작해 배포하고, 이를 전세계에 알리는 글로벌 캠페인을 추진합니다.
일본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 조선인들을 강제 노역시켰던 장소이지만, 일본 정부는 2022년 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일본 사도광산의 등재 추천서를 제출 한 뒤 정부 차원에서 등재를 위해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제국주의 침략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2015년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 노역이 있었던 일본의 군함도 등의 근대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였는데, 이때 역시 조선인 강제 노역의 제국주의 침략역사가 불거지자, 강제노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2021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는 강한 유감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하였습니다.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반대 카드뉴스는 총 9장으로 구성됩니다. 첫 장에는 ‘일본은 세계유산 제도를 이용해 일본 제국주의 역사를 삭제하고 있습니다.’ 라는 메시지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자들의 사진이 사라지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어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등재 추진 사실을 소개하면서,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를 소개합니다. 또한 2015년 일본 군함도 등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시 약속했던, 강제노역 역사를 알리는 조치를 이행하고 있지 않음을 소개합니다.
한편 반크는 지난 6월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를 반대하는 한글과 영문 캠페인 포스터를 제작하여 배포하고 있으며,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로벌 청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3,044명이 해당 청원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반크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반대 카드뉴스는 반크 사이트에 접속해 자유롭게 내려 받아서 알리기에 동참할 수 있으며, 반크 브릿지 아시아에서는 글로벌 청원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카드뉴스 내용>
일본의 사도광산 역사 왜곡 저지
#1
일본은 세계유산 제도를 이용해 일본 제국주의 역사를 삭제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 조선인들이 강제노역했던 장소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사도광산의 이러한 역사를 빼놓은 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고 있습니다.
#2
2022년 2월 1일 일본 정부는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일본 사도광산의 등재 추천서를 제출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은 일본의 전통적인 기술로 오랫동안 금을 생산해낸 가치 있는 유산이라고 설명하면서, 유산의 대상 기간을 16세기에서 19세기 중반으로 한정했습니다.
#3
일본 정부는 왜 유산의 대상 기간을 한정했을까요? 사도광산이 문을 닫았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광산의 이후 역사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도광산은 전통적인 기술로 금을 생산하던 금광이었으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자 구리, 철, 아연 등 전쟁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이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제는 1천200~2천여 명에 이르는 식민지 조선인들을 강제로 동원해 강제노역을 시켰습니다.
#4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많은 한국인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일본의 사도광산은 한국인에게는 식민지배 강제노역의 역사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5
2015년 일본은 군함도(하시마섬) 등 근대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그러나 군함도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이자, 조선인이 강제로 징용되어 노역했던 섬이었습니다.
등재 과정에서 일본은 강제 노동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일본 제국주의 역사를 왜곡하고 삭제했습니다.
#6_
일본이 제출한 세계유산위원회 권고 이행경과보고서
2017년 ‘강제노역’ 표현 삭제
2019년 강제징용 사실 자체를 삭제
2020년 일본 노동자와 다른 지역 노동자들이 모두 가혹한 환경 속에 있었다고 강조
#7
일본은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해서 침략전쟁과 강제노역의 과거를 지우고,
일본의 찬란한 역사만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8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침략전쟁과 강제노역의 과거를 반성하고,
이웃 국가들과 평화로운 미래를 약속해나갈 수 있도록
일본의 사도광산 역사 왜곡을 알리는데 함께 해주세요.
#9
여러분이 반크 글로벌 한국홍보대사가 되어
일본의 사도광산 역사 왜곡을 막아내고 아시아 평화를 지켜주세요!
1. 일본의 역사 왜곡을 알리는 글로벌 청원에 참여해주세요.
2. 일본의 역사 왜곡을 알리는 포스터를 SNS에 홍보해주세요.
3. 일본의 역사 왜곡을 알리는 글로벌 한국홍보대사가 되어주세요.
일본 역사왜곡 국제공론화 및 글로벌 한국홍보대사 활동 참여
bridgeasia.net | peace.prkorea.com
★ 100년전 독립운동가 헤이그 특사 글로벌 홍보 캠페인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와 가치를 오늘에 이어가는 21세기 독립운동 캠페인의 일환으로,
헤이그 특사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알리는21세기 독립운동 ‘헤이그 특사’ 카드뉴스를 제작하여
2022년 7월 14일 배포합니다.
1907년 이준,이상설,이위종으로 구성된 헤이그 특사단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서
일제에 의해 강제 체결된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세계의 협력과 도움을 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특사단은 일본의 방해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의장과 각국 대표들에게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의 입장을 담은 탄원서를 보내고,그 전문을 『평화회의보』에 발표했습니다.
또한 각국 신문기자단이 모인 국제협회에 참석해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를 외쳤습니다.
반크의 헤이그 특사 카드뉴스는 총 5장으로 구성됩니다. 첫번째와두번째 장에는 이준,이상설,이위종 독립운동가의 모습과 그들의 독립운동 활동을 소개하고,
‘헤이그 특사의 꿈을 잇는 21세기 독립운동에 함께 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세번째 장부터는 헤이그 특사들의 활동과이어지는 21세기 독립운동 활동으로 국제외교활동을 할 수 있는 브릿지아시아(bridgeasia.net) 글로벌 청원을 소개합니다!
한국관련 청원으로는 한국의 판소리를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왜곡하는 중국의 문화왜곡 대응 청원과 학생을 군인으로,
학교를 제국주의 군대로 만드는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 대응 청원을 소개합니다.
또한 아시아관련 청원으로 미얀마 문제와 태국 문제 청원 그리고 지구촌관련 청원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청원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 청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반크 브릿지아시아 사이트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세계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한국과 아시아의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글로벌 청원을 진행하고,
세계의 관심과 의견을 모아 나가는 글로벌 청원 플랫폼입니다.
2021년 11월 오픈한 브릿지 아시아는 회원수 9,354명, 청원 참여수19,244건, 청원 조회수 136,451건이 있습니다.
반크는 21세기 독립운동 캠페인의 일환으로 독립운동가 윤봉길, 최재형님을 소개한바 있습니다.
앞으로도 본 캠페인을 통해 한국과 세계의 청년들에게 한국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
한국과 세계를 변화시켜 나가는 활동에 함께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 독립운동가 최재형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5월 22일에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소개하는 카드뉴스를 한국어와 영어로 제작해 소셜미디어(SNS)에서 배포합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은 러시아 지역의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입니다. 1908년 연해주에서 ‘동의회’를 조직해 의병투쟁을 하였고,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지원했습니다. 기업을 경영해 한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었고, 학교를 세우고 장학금을 주어 후진 양성을 했습니다. 민족신문을 발간하여 독립을 향한 한인들의 마음을 모았습니다. 최재형은 뛰어난 수완과 식견으로 기업을 경영해 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동포와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과 목숨을 바쳤습니다.
카드뉴스는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크가 진행하고 있는 우리 독립운동가의 꿈을 잇는 ‘21세기 독립운동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카드뉴스에는 최재형의 사진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에 ‘동의회’를 조직하여 의병투쟁을 한 활동과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지원한 대표적인 독립운동 활동을 소개합니다.
두 번째 카드뉴스에는 러시아 언어와 문화에 능통하여 한인과 러시아의 다리가 되었던 최재형의 활동을 소개하며, 세계의 언어와 문화를 익혀서 한국을 소개하자는 제안을 담았습니다.
세 번째 카드뉴스에는 당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표적인 한인신문인 「대동공보」를 발행 하고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지원한 활동을 소개하며, 신문처럼 정보공유와 소통의 장이 되고 있는 SNS에 한국을 소개하자고 제안합니다.
네 번째 카드뉴스에는 러시아 한인들의 대변자이자 후견인이었던 최재형의 활동을 소개하며,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750만 명의 재외동포들과 협력하여 한국 바로 알리기 활동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반크는 우리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 21세기에 그들의 꿈을 이어가는 ‘21세기 독립운동 캠페인’에 750만 재외동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
★ 독도, 정말 알고 있나요? 1, 2
대한민국 초중고 교사와 청소년들을 위한 글로벌 독도 홍보 활동 교육 콘텐츠 제공!
최근 일본 정부는 초·중·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 확정 고시 및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에서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로 명기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외교청서를 통해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독도를 향한 일본의 역사 왜곡이 전 세계에 확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높은 미국중앙정보국(CIA) 발행 ‘월드팩트북’에는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는 리앙쿠르 록스로 잘못 표기돼 있으며 설명에는 독도/다케시마로 표기돼 있습니다.
최근 일본 외무성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 ‘다케시마 – 법과 대화에 의한 해결을 지향하며’라는 제목의 영상을 11개 국어(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카탈루냐어, 아랍어, 러시아어)로 올렸습니다.
일본 외무성, 다케시마 – 법과 대화에 의한 해결을 지향하며
MOFA Japan, Takeshima – Seeking a Solution based on Law and Dialogue
또한, 독도뿐만이 아니라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욱일기를 일본의 오랜 전통 문양이라며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이 영상들에서 일본은 침략전쟁 당시에 강제로 빼앗아 간 영토가 정당한 일본의 영토며, 욱일기 또한 전쟁의 상징이 아니라 보통 국가의 국기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이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제국주의에 기반한 전쟁범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입니다. 이에 반크는 전국의 1만 초중고교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일본의 독도 왜곡에 대해 전 세계인들에게 바로 알리는 방법을 배워, 일본의 독도 왜곡에 대응하는 글로벌 한국홍보대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독도 교육 홍보 콘텐츠를 한국어와 영어로 제작해 배포합니다.
‘독도, 정말 알고 있나요?’ 시리즈는 1, 2부로 나뉘어 있으며 독도를 지키기 위해 기억해야 할 8가지 이야기를 한국어와 영어로 소개합니다.
이 카드뉴스 시리즈는 한국의 섬, 독도를 전 세계인에게 능동적으로 알려 나가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독도가 왜 정당한 한국의 영토인지 설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반크의 독도 콘텐츠는 국내 초중고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반크 사이트와 해외 사진 공유사이트인 플리커에서 자유롭게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 반크, 한지 글로벌 홍보를 위한 한국어, 영어 카드 뉴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최근 한지살리기재단(이사장 이배용)은 최근 업무협력을 맺고 한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2026년까지 등재시키겠다는 목표로 현재 여론을 조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반크에서는 는 한지를 전세계에 알리는 첫 사업으로 한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한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어야 하는 이유를국내외적으로 알리고자 한지를 설명하는 카드 뉴스를 한국어, 영어로 제작하였습니다.
반크는 특히 세계속에 높아진 한류에 대한 관심을 한지로 이어질수 있도록 전세계 1억 5천만 한류팬들에게 한지를 친근하게 알리고, 특히 전세계 한국학교 교사와 한인 청소년들이 수업시간에 한지에 관해 배울수 있도록 홍보해나갈것입니다.
카드 뉴스는 총 10장으로 한국어, 영어로 제작되었으며, 한지가 장인의 손끝에서 출발해 장인의 손끝에서 마무리 지어지는 100번의 공정을 거쳤다는 의미의 백지(百紙)와, 흐르는 물에 정성스레 씻고 티를 골라낸 닥나무 흰 속살로 만들어졌다 하여 백지(白紙)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설명을 시작합니다.
한지는 한국의 전통 종이로, 과학기술과 장인 정신의 집약체이자 일상생활 속 기록을 넘어서 한국의 역사를 품고 있는 한국 고유의 종이입니다. 현재 한국은 이러한 한지의 중요성을 인지해 202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한지를 등재하려는 시도를 국가적으로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지의 첫 사용은 약 2~7세기 경이며, 특히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고려지(繭紙)는 외국에서도 감탄할 정도로 품질이 우수했습니다. 또한 한지는 사용 용도, 재료, 두께, 길이, 색, 심지어 광택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데, 한지가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어떤 한지를 사용해야 하는지 구분하고자 그렇게 불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 후 한지가 일상생활에서 사용될 수 있었던 까닭은 한지가 기본적으로 질기고, 촉감이 부드러우며, 세균 저항에 강하고, 보존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라는 강점을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한지는 책과 그림, 그리고 일상 공예품까지 자주 사용되었으며, 직지심체요절이나 훈민정음과 같이 한지로 만들어진 13건의 한국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현재까지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었음을 언급하였습니다.
더욱이 한지는 친환경적인 재료를 사용하고, 재사용도 할 수 있어 더욱 우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지의 장점은 현대에도 빛을 발하고 있는데, 유물을 보강할 때도 한지를 사용하고 있고, 현대는 기술이 발달해 한복이나 인형, 공예품, 조각 등 다양한 곳에서 한지를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페이지는 많은 사람들이 한지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현재 한지 카드뉴스는 누구나 자유롭게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해외 사진 공유사이트인 플리커에 올라가 있으며, 카드뉴스 외에도 디지털 포스터, 글로벌 청원 등을 제작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 한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중국의 선지, 일본의 화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미 등재되었는데 한국의 한지는 안되어있습니다. 비단의 수명은 500년을 가지만 한지의 수명은 1천년을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크는 중국의 선지, 일본의 화지에 비해 아직 세계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한지를 전세계에 알리고, 2026년 유네스코에 한지를 등재시키고자 합니다.
★ 윤봉길 의사 의거 90주년을 맞아 21세기 윤봉길 의사 꿈 이어나가기 캠페인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100년 전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던 우리 독립운동가의 꿈을 잇는 21세기 독립운동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캠페인의 1탄으로 반크는 4월 29일 윤봉길의 의거 일을 맞아, 독립운동가 윤봉길의 활동을 소개하고, 21세기에 그의 꿈을 계승할 수 있는 실천 활동을 소개하는 한글, 영문 카드뉴스를 제작했습니다.
카드뉴스는 총 4장으로 구성되고 한글과 영문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장에는 현대적인 양복을 입은 윤봉길의 모습과 그의 의거를 소개합니다.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왕의 생일과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심판했던 윤봉길의 활동을 소개합니다.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그의 의거를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한 일을 일개 조선 청년이 해냈다.”며 크게 평가했습니다. 그의 의거를 통해 전 세계는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고, 한동안 침체에 빠져있던 임시정부는 다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장은 19살에 야학당을 개설하고 「농민독본」을 저술하며 교육에 힘썼던 윤봉길의 활동을 소개하고, 그 뜻을 이을 21세기 독립운동 활동으로 한국의 역사, 문화 공부를 제안하며, 독도와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소개합니다.
세 번째 장에는 거사일 아침 백범 김구와 자신의 시계를 맞바꾸었던 윤봉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그 뜻을 이을 21세기 독립운동 활동으로 친구들과 연대하는 한국 바로 알리기 활동을 제안하며 전국 초·중·고 학교의 한국 바로알리기 동아리 활동을 소개합니다.
마지막 장에는 1932년 4월 29일의 윤봉길의 의거를 소개하며 전 세계인들과 친구가 되어 한국의 역사를 바르게 소개할 수 있도록 한국에 관심 있는 세계인들과 교류할 것을 제안하고, 전 세계 1억 한류 팬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바로 알리기 활동을 소개합니다.
반크는 21세기 독립운동 캠페인을 통해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100년 전 활동했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바르게 알고,
그 뜻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21세기 독립운동 실천 활동을 계속 제안해나갈 것입니다.
국내 청소년과 청년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해외 동포들도 이 활동을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참여하는 방법은 반크에서 제공하는 독립운동가 윤봉길 카드뉴스를 SNS를 통해 전 세계에 알리고, 21세기 윤봉길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반크가 제시한 활동을 자신들이 소속한 단체, 학교, 회사를 통해 구성원들과 함께 추진하면 됩니다.
반크는 특히 전 세계 750만 한인동포와 한국학교 교사와 한인 청소년들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역지 사지 한국문화유산 홍보 프로젝트!
반크는 세계인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보다 전 세계인들에게 친근하게 알려나가기 위해 역지 사지 한국 홍보 프로젝트를 추진합니다.
역지사지 한국 홍보 프로젝트는 한국의 문화유산과 비슷한 외국의 문화유산을 찾아 비교해서 상대방 국가에 한국 문화유산의 인지도와 친밀감, 호감도를 높여나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창덕궁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비교해 프랑스 국민들에게 한국의 문화유산을 홍보합니다.
베르사유 궁의 전각 양식은 달라고 후원이 광대하다는 점은 창덕궁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베르사유 궁의 후원은 인공미이고, 비원이라 불리는 창덕궁 후원은 자연미입니다. 이런 식으로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설명해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외국인들의 친밀성과 호감도를 높여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반크는 총 10개의 한국의 문화유산과 프랑스, 영국, 캄보디아, 인도, 덴마크, 미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터키, 아제르바이잔의 문화유산을 비교하는 카드 뉴스와 동영상을 한국어와 영어 자막을 달아 전 세계에 홍보합니다.
반크는 세계 속에 높아진 한류를 바탕으로 전 세계 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국 문화를 알려나간다면 한류를 전 세계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반크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미주와 유럽 등 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나라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아세안 등 세계 속에 알려지지 않는 아세안 나라의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가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의 국가 홍보 역량을 과거 한국처럼 알려지지 않았던 아세안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홍보하는 데 사용하고자 합니다.
반크는 이번에 제작된 역시 사지 한국 홍보 카드 뉴스와 동영상을 앞으로 반크 회원들이 전 세계 외국인들과 한국을 홍보활동할 때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 대한민국 창덕궁 |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 대한민국 고인돌 | 영국 스톤헨지
★ 대한민국 아리랑, 판소리 | 캄보디아 차페이 당 벵
★ 대한민국 석굴암 | 인도 아잔타 석굴
★ 대한민국 갯벌 |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의 바덴 해
★ 대한민국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vs 미국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
★ 대한민국 산사 | 미얀마 바간
★ 대한민국 연천 전곡리 유적 | 말레이시아 렝공 계곡 고고학유산
★ 대한민국 백제역사유적지구 | 터키 이스탄불 역사지구
★ 대한민국 수원 화성 | 아제르바이잔 바쿠 성곽도시
★ 3·1 독립선언서를 전세계에 알리는 카드뉴스
반크는 103주년 삼일절을 맞아 ‘3·1 독립선언서’를 전세계에 알리는 카드뉴스를 제작해 SNS를 통해 참가자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반크는 독립선언서를 세계에 쉽게 알리기 위해 이를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아랍어, 몽골어, 베트남어, 이탈리아어, 인도네시아어, 네덜란드어 등 12개 외국어로 번역했습니다. 캠페인 참여 희망자는 각각의 언어로 된 독립선언서를 읽은 뒤(kkum.prkorea.com/proclamation) 감명받은 글귀를 손글씨로 써서 소셜미디어(SNS)에 올리고, ‘한류’와 독립운동 관련 해시태그(#한류, #Hallyu, #Koreanwave, #3.1운동, #3·1독립선언서)를 달면 됩니다.
‘한류'(Hallyu)를 해시태그에 넣은 것은 세계 1억 한류 팬에게 독립선언서와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알리겠다는 뜻입니다. 반크는 세계 한류 팬이 3·1운동과 독립선언서의 세계사적 의의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영어 동영상도 제작해 유튜브(youtu.be/-xy_XTJ6kzk)에 게시했습니다.
반크는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노역 장소인 군함도(端島), 사도(佐渡)광산 등 제국주의 침략역사를 부정하며 국제사회에 왜곡된 역사를 확산하고,
이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해 세탁하려고 한다”며 “이에 맞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어 캠페인을 펼친다”고 밝혔습니다.
★ 직지의 의미와 가치
<직지의 의미와 가치를 외국 친구세계에 쉽게 알리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JIKJI
‘직지’는 1377년 금속활자 기술로 인쇄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1455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인쇄되었습니다.
Information
‘정보’가 소수 권력자에 의해 독점된 시대, 금속활자기술은 정보의 대중화를 가능하게 했으며, 르네상스, 종교개혁,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KOREA
‘코리아’, 오늘날 세계인들이 부르는 대한민국 이름 또한 직지가 인쇄된 고려 시기(918-1392)에서 유래가 되었을 정도로, 고려는 전세계와 널리 교류하던 국제적인 나라였습니다.
JIKJI ROAD
‘직지 길’, 고려 시대 한국의 금속활자 기술이 유럽으로 전파될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길로 이를 찾는 세계인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IMPACT
임팩트 월드! 한국인은 기록을 남겨 다음세대와 세상에 ‘영향’을 주고자 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3위, 아시아 1위. 한국인은 기록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인류문명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Jikji(직지) Information(정보) Korea(코리아) Jikji Road(직지 길) Impact(영향)
직지의 숨겨진 가치와 의미를 전세계 친구들에게 알려주세요!
여러분이 바로 반크 <한국 문화유산 홍보대사> 입니다.
★ 해양영토개발
★ 유네스코 직지상
★ 대한민국의 기록유산2
★ 대한민국의 기록유산1
★ 세계인들의 오랜 편견을 깨트린 유산
★ 한국의 친구 파키스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 전체 인구의 97%가 이슬람 문화권인 나라, 산이 많아서 자연이 정말 아름답고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속도로가 있는 나라.
멀게만 느껴지는 파키스탄과 한국 사이에도 비슷한 음식과 멋진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파키스탄의 음식 아차르, 한국의 음식 김치와 파키스탄의 로타스 요새, 한국의 남한산성을 비교하여 한글, 영어, 우르두어로 소개합니다.
반크는 대한민국과 아시아, 세계 모든 청소년들이 아시아친선대사로 변화되어 아시아와 친구가 되고 21세기 아시아 시대를 주도해나가기를 꿈꿉니다.
★ 한국의 친구 네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카트만두 계곡’과 한국의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또한 세계의 문맹 퇴치를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한국과 네팔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한국은 한글 창제의 정신을 기림과 동시에 세계 문맹 퇴치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1989년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제정하였습니다. 2020년에는 노인을 위한 기초 문해 교실인 네팔의 ‘네팔 노령 기구’가 이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한국어, 영어, 네팔어로 한국과 네팔을 비교해 카드뉴스로 소개합니다.
반크는 대한민국과 아시아, 세계 모든 청소년들이 아시아친선대사로 변화되어 아시아와 친구가 되고 21세기 아시아 시대를 주도해나가기를 꿈꿉니다.
★ 직지와 박병선 박사
호메로스 「일리아스」에 나오는 트로이 유적을 발굴해 세상을 놀라게 한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을 알고 있나요? 슐리만처럼 숨겨져 있던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발견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한국인이 있습니다. 바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린 박병선 박사입니다.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직지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렸습니다. 직지의 표지에는 프랑스어로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한국 책, 연대 1377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박병선 박사는 연구를 통해 직지가 금속활자 인쇄본임을 고증하고,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책의 해 기념 도서전에 소개하였습니다.
★ 직지와 한국의 인쇄문화
직지와 한국의 인쇄문화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는 한국의 위대한 문화유산입니다.
한국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할 수 있었을까요?
한국은 일찍부터 인쇄술이 발달한 나라였습니다.
751년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인쇄하였고
금속활자제작에 필요한 주조 기술과 종이와 먹의 제작기술도 뛰어났습니다.
「직지」를 인쇄한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조선으로 이어져
조선 시대에는 유교 경전과 성리학, 문화, 역사 등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었습니다.
직지와 한국의 인쇄문화를 소개하는 카드뉴스를 통해
「직지」를 비롯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인에게 바르게 소개해봅시다.
★ 한국의 친구 우즈베키스탄
천 년이 가는 종이라고 불리는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종이’와 한국의 ‘한지’, 3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무술 ‘쿠라쉬’와 오천 년의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무예 ‘태권도’를 비교하면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영어, 우즈베크어로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을 비교해 카드뉴스로 소개합니다.
반크는 대한민국과 아시아, 세계 모든 청소년들이 아시아친선대사로 변화되어 아시아와 친구가 되고 21세기 아시아 시대를 주도해나가기를 꿈꿉니다.
★ 반크는 왜 직지를 세계에 홍보하는 걸까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직지를 전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석굴암, 고려청자, 훈민정음, 창덕궁등 한국의 수많은 찬란한 문화유산중에서 왜 직지를 홍보하는걸까요?
첫째, 직지가 전세계 외국인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한국의 창조적인 문화유산을 알릴수 있기 때문입니다.
돌째, 직지는 한국역사에 대한 세계인의 편견을 바꿀수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 한국의 친구 몽골
반크는 한국과 몽골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카드 뉴스를 제작했습니다
카드 뉴스는 몽골어와 영어, 한국어로 몽골과 한국을 비교해 소개합니다.
몽골의 게르와 한옥, 전통악기인 모링호르와 고려 시대부터 궁중음악과 민속곡에서 폭넓게 연주된 해금을 비교하면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카드 뉴스는 유럽과 미국 중심의 편향된 인식을 개선하고, 세계인의 아시안 편견을 바꾸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 해양문화대국을 향한 한국 청년의 꿈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해양문화대국”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반크는 바다를 뜻하는 영어단어 Ocean 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상상하는 카듀뉴스를 제작해 전세계에 알립니다.
Ocean 의 O는 동양(Orient) 평화
Ocean 의 C는 도전(Challenge) 정신
Ocean 의 E는 해양환경(Eco-friendliness) 보전
Ocean 의 A는 바다의 꿈(Ambition)
Ocean 의 N는 연결(Networking)
★ 한국의 해양 영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전세계에 한국의 해양영토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무관심하고 있는 사이에 일본과 중국은 적극적으로 해양영토를 전세계에 알리고 있고,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에 독도, 동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것입니다
이에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한국의 해양 영토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서
바로 알수 있는 카드뉴스를 제작해 전세계에 배포합니다.
★한국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
반크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효과적으로 알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카드 뉴스를 제작했습니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카드 뉴스는 한류에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들에게 영어 단어 ‘Cilture'(문화)의 앞글자를 따서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Creativity'(창의성), ‘Universality'(인류 보편성), ‘Love'(사랑), ‘Transformation'(변화와 혁신), ‘Unity'(융합), ‘Restoration'(회복), ‘Environment'(환경과 조화)라는 키워드로 소개합니다.
★ 한국의 경제 발전
1960년 1인당 국민소득은 68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였지만
1996년, OECD 에 가입하여 2018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2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 일본교과서 왜곡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교과서 왜곡 문제를 알리는 카드뉴스입니다.
일본 정부는 무려 20년에 걸쳐 일본 초·중·고교의 교과서를 왜곡해왔습니다.
2020년 초등학교, 2021년 중학교, 2022년 고등학교 순으로 일본의 모든 초중고 학교에서는 대한민국 영토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배우게 됩니다.
19세기 ‘정한론’을 통해 일본의 청년들에게 한반도와 아시아 침략의 씨앗을 심었던 일본이,
이제 일본교과서 왜곡을 통해 21세기 ‘신(新) 정한론’을 일본 청소년에게 심으며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일본교과서 왜곡> 카드뉴스는 세계인들에게 일본교과서 왜곡 문제를 소개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 군함도등 일본 산업혁명 유산
유네스코에 등재된 일본 산업혁명 유산의 문제점을 알리는 카드뉴스입니다.
2015년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유산의 이면에는 일본 제국주의 불행한 역사가 숨어있습니다.
유산에 포함된 여러 시설 등에서 한국인, 중국인, 연합군포로 등이 강제 노역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등재 당시 일본 정부는 이러한 피해의 역사를 소개하고 이들을 기리는 조치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약속을 이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본 산업혁명 유산> 카드뉴스는 세계인들에게 일본 산업혁명 유산의 전체 역사를 알리고 일본의 약속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 욱일기는 전범기
전범기인 욱일기 사용의 문제를 알리는 카드뉴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깃발이었던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사용되었던 욱일기는 일본은 물론 세계인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욱일기 깃발 아래 약 2000만 명 이상의 아시아인들이 목숨을 읽었습니다.
<욱일기는 전범기> 카드뉴스는 세계인들에게 전범기인 욱일기를 바르게 알려 나가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 동해 표기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의 동해 표기 전략을 소개하는 카드뉴스입니다.
반크는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의 지도, 교과서, 웹사이트 등에 표기된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 노력으로 세계 유명 지도제작자, 교과서 출판사, 관광 출판사 등에서 ‘동해’를 단독 표기하거나 일본해와 함께 적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99년에는 3%밖에 되지 않았던 동해 표기가 2019년에는 약 40%로 증가했습니다.
<반크 동해 표기> 카드뉴스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참여하여 100% 동해 표기를 이루어나가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 아세안 역사와 문화 소개
반크는 유럽과 미국 중심의 편향된 인식을 개선하고, 세계인의 아세안 편견을 바꾸기 위해 아세안 각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카드뉴스를 제작했습니다.
반크가 카드뉴스를 제작한 이유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전세계에 알린 역량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만큼 국제사회에 역사와 문화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아세안 나라들을 홍보하기 위해서입니다.
반크 아세안 카드뉴스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아세안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소개하는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어 한국과 아세안 나라들을 함께 전세계에 홍보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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